[애프터라이프] 모리매니 시안매니 썰
1. Cherry Boy
"...요즘 묘하게 붙어있지 않냐, 너희 둘?"
매니저 사무실에 잠깐 들렀던 건, 그러니까 별 건 아니고. 명계 카페에서 매니저가 좋아하겠다 싶은 디저트를 발견해서였다. 설탕이 코팅된 체리가 듬뿍 올라간 타르트 두 개. 환하게 웃을 매니저의 모습을 상상하며 반 쯤 홀린 듯 결제를 마치고 허겁지겁 지부로 돌아왔을 때 눈에 보이는건 오늘'도' 붙어있는 둘의 모습이었다.
"저희가요?"
자신이 들어온 지금도 매니저 옆에 딱 붙어 앉아 있는 놈이 천연덕스럽게 저런다. 시안은 눈썹을 꿈틀대며 말을 골랐다. 모리와 매니저. 저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요즘 상당히 자주 눈에 띤다. 시안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카티는 오늘도 누나가 모리 녀석과 찰싹 붙어서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다며 칭얼댔고, 뿌득 이를 갈며 모리를 노려보던 테오의 차가운 눈빛이 방금 전 일 처럼 생생했다. 매니저가 하하- 어색하게 소리내어 웃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 표정 변화 하나 없는 모리와는 달리 매니저는 얼굴에 다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본인도 알고 있던 거겠지. 시안은 한숨을 내쉬며 둘이 보고있던 컴퓨터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극장 개봉한지 얼마 안 된 영화. VOD가 벌써 나왔던 건가. 매니저가 지나가듯 보고싶다고 말했던 것과는 다른 영화였다. 시안은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거, 지루하다고 소문 난 영화잖아. 저런 걸 보고있었다고?
"시안?"
"어? 아. ...이거 먹어."
"뭐야 이게?"
매니저는 시안이 건넨걸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타르트네요. 빼꼼 종이 봉투 안을 들여다보던 모리가 덧붙였다. 매니저님, 좋아하시는 거잖아요? 자상한 목소리로 덧붙이는 모리의 말에 기어코 시안의 속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환해지는 매니저의 얼굴을 보자 짜증은 물 밀듯이 사라지고 만다. 나도 참 멍청하지.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샀다고 하려고 했는데. ...선수를 빼앗겼다. 시안은 분한 얼굴로 모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모리는, 다 알고 있다는 얼굴로 턱을 괸 채 웃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그 모습에 순간 욱해서 뭐라도 말하려던 순간, 모리는 매니저의 뒤에서 말없이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매니저의 뒷 목. 그리고 도장처럼 찍혀있는 붉은 자국들. 시안은 그게 뭔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다.
"...둘이 먹어라. 간다."
"어? 시안! 같이 먹지, 왜?"
"곧 저녁 먹을 시간이잖냐. 난 그냥 바로 밥 먹을랜다-."
멍청해 진짜. 시안은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섰다. 모리의 그 표정은 분명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당신이 낄 자리는 없어요. 그리고 분하게도, 시안은 그걸 눈치 채고 말았다. 굳게 닫힌 사무실의 문을 바라보던 시안은 한숨 섞인 발걸음을 옮겼다.
2. He is
"매니저 님."
"......"
"신경 쓰여요?"
멍하니 시안이 나간 문을 바라보던 매니저가 모리를 바라본다. 이제야 봐주시네요. 모리는 매니저의 옆머리를 넘겨주며 책상 밑으로 잡고있던 맞닿은 손등을 달래듯 문지른다. 언뜻 보기엔 자상한 모습이었지만, 그건 명백한 섹스 어필임을 매니저는 안다.
"...조금. 시안 얼굴이 새빨개져서 나가던데."
"흐음."
"무슨 짓 했지, 모리?"
"그럴 리가요. 조용히 있었는걸요, 말씀대로."
믿을 수가 있어야지. 툴툴거리며 괜히 책상 위를 정리하는 매니저의 머리카락 끝에 입을 맞추며 모리는 서글픈 듯 웃었다.
"설마 아직도 저를 못 믿으시는건가요?"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만..."
사람을 못 믿는 모리가 유일하게 진심으로 믿는 게 자신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이용해 자신을 마음껏 휘두르고 있다는 것. 기묘하게도 역전된 갑을 관계가 이상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매니저는 속수무책으로 그에게 빠져들고 말았다. 왜일까... 언제부터 였을까. 자신의 태도에 살짝 풀 죽은듯한 모리의 표정이 마음 쓰여, 매니저는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 털어버린다. 잠시나마 의심해서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로 자신의 품에 안기는 매니저를 끌어안으며 모리는 숨 죽여 미소지었다. 곧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
"타르트 먼저 먹을까요?"
"......"
"아니면, 하던 거 계속?"
"...하던게 좋아."
"타르트 안 먹을거면 냉장고에 넣어야 할텐데요."
"...심술 부리지 마. 미안하다니까."
네. 말씀대로 할게요. 모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입을 맞추었다. 조금이라도 그녀와 닿아있지 않으면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자신이면서.
fin.